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움직임이 수상하다. 얼핏 미소가 엿보인다. 압수수색 방해와 증거인멸 등 공권력 도전을 계기로 검찰은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는 분위기다.
‘당권파’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의 국회 입성을 거부하는 정치․사회적 연대 움직임이 형성되면서 검찰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형성되는 ‘황당한(?)’ 현실 또한 검찰이 요즘 어깨에 힘을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야권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는 비난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검찰을 지지하는 누리꾼들의 목소리가 비등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통합진보당 압수수색 과정에서 강한 반발을 경험한 검찰은 일단 당권파와 나머지 당내 세력을 분리해서 접근하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다. 오히려 여론의 융단폭격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이 뒤로 물러서는 형국이다.
이들은 23일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재창당 수준의 근본적 혁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당내 이른바 ‘종북(從北)주의’와 관련, 이에 대한 당의 기조를 재정립할 수 있음을 내비쳐 주목된다.
검찰은 지난 22일 진행한 통합진보당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일부에서 제기되는 ‘공안수사’ 비난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정점식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23일 오전 기자브리핑을 통해 “현재 통진당은 원내 제3당이고 우리나라는 정당투표율에 따라 국고보조금을 4년에 걸쳐 수십 수백억원씩 지원해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부정경선 문제는 당 내부 문제니까 국가기관이 관여하지 말라는 식으로 주장한다면 통진당에 투표한 200만명의 국민은 뭐가 된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정 검사는 이어 “정당이면 정당의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국민에게 져야 할 책임도 있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검찰이 통진당 부정경선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지 않으면 국민의 여망을 져버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사실상 통합진보당 관련 의혹에 ‘전면전’을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이 단순히 부정 경선 의혹에 대해서만 칼을 들이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수사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는 관측이다. 통합진보당 관련 의혹들은 단순한 ‘일회성 사건’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시각으로 보인다. 장기전으로 끌고 갈만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이어지고 언제까지 지속되느냐에 따라 자칫 야권 연대 붕괴를 초래할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당의 자유를 짓밟는 행위”라는 야권의 반발처럼 ‘정치적 수사’로 해석될 수 있다. 검찰이 웃으면서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는 이유다.
검찰 내부에선 이번 사태를 “메가톤급 사안”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정국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그동안 검찰이 보여줬던 모습에 비춰볼 때 통합진보당과 관련된 수사는 대선 전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는 차츰 밟아 올라가야 한다. 위 단계까지 올라가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지루한 수사가 될 것”이라며 장기전을 예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 ‘통합진보당과의 전쟁’ 선포한 검찰, 칼날 어디까지 겨눌까
결국 검찰이 지난 21일 통합진보당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향후 검찰의 칼끝이 당의 어느 곳을 향할지 주목된다. 섣부른 감이 있지만, 통합진보당에 전면전을 선포한 검찰이 구 당권파의 자금줄을 사실상 쥐고 있는 CN커뮤니케이션즈(구 CNP전략그룹)를 노리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우선 검찰은 이번 압수수색의 시발점이 된 부정 경선 사태에 대한 수사와 함께 통합진보당 서버 관리 업체에서 압수한 당원 명부를 검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경선 부정사태에 대한 진상 조사가 당 진상조사위에서 검찰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이미 발견된 부정 사례에 대한 추가 수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검찰의 추가 조사에 따라 부정 선거 관련자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내에서 부정 경선 파문이 구-신당권파 측 세력 다툼으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양측간 부정 의심 사례에 대한 폭로도 이어지고 있어, 수사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원명부가 검찰의 손에 넘어감에 따라 정치적 중립 의무로 인해 정당 가입이 금지된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와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의 정치자금 후원 및 당비 납입 의혹이 수면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이와 함께 지난 12일 일산 킨텍스에서 발생한 중앙위 폭력 사태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임정혁 대검찰청 공안부장은 브리핑에서 “통합진보당은 당내 각 정파의 첨예한 대립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는 국민의 걱정과 우려를 넘어 공분을 초래하게 됐다”고 수사 의지를 드러냈다.
여기에 검찰의 압수수색에 무력 시위로 저지에 나섰던 통합진보당 당원들에 대해서도 일부 시민단체가 경찰에 고발함에 따라 일반 당원 전반에 걸친 수사가 전개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정치적 목적을 담고 있는 만큼 통합진보당의 ‘숨통’인 회계 장부에까지 칼끝이 겨눠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당의 심장’이라고 비유한 당원 명단이 이미 검찰의 손에 들어간 만큼, 전교조와 전공노의 정치자금 흐름이 감지되면 이를 빌미로 당 회계 전반에 걸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특정 업체에 대한 ‘자금 몰아주기’와 당비 용처에 대한 의혹 등이 제기돼 온 만큼 검찰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당의 근간을 흔들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구당권파의 핵심 실세로 알려진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가 대표로 있는 CN커뮤니케이션즈로 수사가 확대될 경우 구 당권파측 ‘비밀 장부’가 모두 노출되며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진보논객인 진중권 문화평론가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선거부정 외에 아마 CNP가 집중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합진보당의 광고·홍보 업무를 사실상 독점해 온 CN커뮤니케이션즈는 구 당권파 측을 중심으로 한 통합진보당의 핵심 회계 조직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번 19대 총선 과정에서도 지역구에 출마한 52명 중 20명의 후보자가 이 회사에 유세차량 임대와 홍보 업무를 맡기는 식으로 12억원 이상의 ‘일감 몰아주기’를 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 검찰 수사 종착지는 ‘경기동부연합’ 핵심 이석기 당선자
그렇다면 검찰 수사의 최종 종착지는 과연 어디일까. 일단 수사 진행상황에 따라 내주 19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검찰의 통합진보당 수사가 정치권의 핫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검찰청이 공식 자료를 통해 그동안 제기된 통합진보당의 각종 의혹 전반을 모두 들여다보겠다고 선언한 만큼 검찰과 통합진보당이 사실상 전면전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 검찰이 당내 경선부정에 국한해 수사를 진행하겠지만, 참고인 소환과 각종 압수물 분석 작업을 통해 수사의 지평이 점점 확대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검찰 관계자는 없는 상태다.
이미 검찰은 통합진보당과 관련한 고소고발 등으로 촉발된 각종 의혹을 들여다 보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위원회 폭력사태의 경우 서울경찰청 수사지휘를 통해 당일 폭력사태에 관여한 당권파의 면면을 확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가 직접 수사중인 비례대표 경선부정 의혹 외에도 검찰은 야권단일화 여론조작 의혹, 핵심인사들의 금품관련 의혹 등도 전반적인 사실관계 확인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통합진보당에 대한 전반적인 스크린 과정에서 돌발 사안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종북 내지 친북성향의 문건이나 활동, 조직 등이 적발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의한 공안사건으로 발전될 여지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이같은 의혹의 정점에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의 핵심세력인 ‘경기동부연합’이 자리잡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미 통합진보당 사태가 불거진 직후부터 경기동부의 핵심실세로 알려진 이석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인에 대해 전반적인 내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검찰은 지난 당내 경선부정과 관련, 이석기 당선인이 조직적으로 지시 혹은 관여했는지,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수사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검찰 수사의 종착지가 이석기 당선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 있게 부상하고 있다. 즉, 검찰의 수사는 통합진보당 내 ‘종북세력’까지 수사가 확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 수사를 하다 보면 뭐가 나올지 모른다”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국회의원 이석기의 첫 시련은 민혁당 사건 이후 또다시 다가온 검찰의 칼날을 얼마나 잘 피해가느냐에 달려있다는 해석이다.
◆ ‘정당해산심판’ 까지 갈까
통합진보당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검찰이 전방위 수사 의지를 천명, 사실상 통합진보당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이번 사태가 ‘정당해산심판’으로까지 이어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당해산심판은 헌법 8조 4항에 규정돼 있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는 내용이다.
우리 헌법의 가치기준인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게 하면서도 그 해산은 정치적 중립기관의 위상을 갖고 있는 헌재의 신중한 심판 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이를 이용한 정부의 야당 탄압을 경계하는 제도다. 법무부장관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 대표 자격으로 헌재에 정당을 해산시켜 줄 것을 청구하면 정당해산심판 절차가 진행된다.
정당해산심판은 정부만이 헌재에 청구할 수 있고, 일반 국민은 정부에 대해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해 달라는 ‘청원’을 할 수 있다. 실제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해 시민단체 활빈단은 지난 16일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활빈단은 청원서에서 △통합진보당 중앙위 집단 폭력 사태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했으며 △민중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통합진보당의 목적, 강령, 정치활동 등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가 실제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헌법재판소 설립 이례 전례가 없는 일인 데다 실제 이를 헌재에 제소한다 해도 헌재가 이를 받아들이거나 해산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현재 통합진보당의 강령이나 당헌 등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뒤흔들 정도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는 순간 정치적, 사회적 논란만 키울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통합진보 “정치검찰이 진보정당 탄압한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23일 검찰의 압수수색 사태 및 전면적 수사 움직임에 대응, ‘정치검찰 진보탄압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정미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당은 이번 검찰의 당원명부 압수수색은 부정선거를 빌미로 당원의 신상정보 전체를 확보해 진보정당을 탄압하려는 것이 명백한 정치검찰의 진보정당 탄압으로 규정한다”며 대책위 출범을 알렸다.
민병렬 혁신비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은 대책위는 공동대변인단을 구성,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 및 시민사회 진영과의 공동대응에도 나설 계획이다. 대책위는 당 내외 인사 11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공동변호인단은 이강철 변호사 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꾸려질 것으로 보인다.
당은 대책위와 공동변호인단 인선을 가능한 빨리 확정한 뒤 당원 명부가 담긴 당 서버 관리업체의 서버 등 압수수색 물품을 돌려받기 위한 구체적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책위는 헌법상 보장된 정당 정치활동의 기본권 침해를 근거로 영장무효소송 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선 이미 압수된 물품을 돌려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27일까지 발부돼 있는 만큼 추후 이뤄질 수 있는 추가적 압수수색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자구책의 성격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책위는 이와 함께 압수수색 과정에서 통합진보당 측 변호인의 입회가 이뤄지지 않았고 압수 물품에 대한 명단 제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압수수색 절차에 하자가 있었음을 들어 압수수색 무효 가처분신청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또 정당정치의 기본권을 침해한 데 대해 국가에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도 이것이 이미 이뤄진 압수수색을 무효화하거나 향후 압수수색에 대한 조치가 되지는 않겠지만 검찰에 심리적 압박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향후 검찰의 소환 조사 등에 대해서는 전면 불응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는 식으로 수사에 대한 ‘비타협 불복 전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통합진보당은 야권·시민사회 진영과 공동대응을 위한 노력에도 당력을 모으기로 했다.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은 이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도식에 참석,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오찬을 함께 하며 야권의 공조 노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도 이날 정진우 부대변인 논평을 통해 “검찰의 통합진보당 정당명부 압수수색은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명백한 야당 탄압”이라고 호응해 공조 가능성을 시사했다. 민변도 논평을 통해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은 위헌, 위법을 면할 수 없는 중대한 하자를 갖고 있다”며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중대한 절차상 위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진=제휴사 뉴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