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 최종 판결 1달 앞두고 “SK이노베이션 증거인멸 제재” 요청
특허 및 영업비밀 침해·인력 유출 등 복잡하게 얽혀
LG화학, 국내 소송서 승소했지만 ITC 전면 재검토는 변수
SK이노베이션, 패소 시 막대한 투자 손실에 이미지 타격 우려
합의금 ‘상식적 수준’ 놓고 입장 차…갈등 심화로 협상 교착상태

[팩트인뉴스=변윤재 기자] 배터리 특허 소송을 둘러싼 LG화학와 SK이노베이션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1년 반이 넘도록 영업비밀 침해와 특허 침해 등 관련 소송을 주고 받는 중이다. 최근 양측의 협상이 결렬돼 ‘원만한 합의’의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증거인멸 제재” 요청한 LG화학…SK이노베이션 “본질 흐린다”
3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지난달 28일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을 제재해달라는 요청서를 제출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9월 3일 LG화학의 배터리 기술이 자사 특허(특허 번호 994)를 침해했다며 낸 소송과 관련된 요청이다.
LG화학은 요청서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선행 배터리 기술(A7 배터리)을 침해해 994 특허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2015년 6월 특허를 등록하기 전부터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배터리 기술을 알고 있었던 것은 물론, 기술 침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올해 3월까지도 증거인멸을 했다는 것이다. 994 특허 발명자가 LG화학의 선행기술 세부 정보가 담긴 문서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를 논의한 프리젠테이션 문서가 발견된 점을 증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LG화학은 A7 배터리가 크라이슬러에 여러 차례 공급된 만큼, SK이노베이션의 특허는 신규성이 없다는 점을 인정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LG화학의 특허 침해가 확실하고 증거 인멸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의견서도 11일까지 제출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1980년대 초 이미 비전을 설립하고 전기차 배터리 연구를 진행시켜 왔다. 그 결과 2008년에 현대차에 우리가 만든 전기차 배터리가 탑재된 바 있다”며 “LG화학이 우리 기술을 침해한 게 있다는 게 핵심으로, 영업비밀 침해와는 결이 다른 문제인데 ‘증거 인멸’로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소송에는 소송으로 점입가경 ‘배터리 전쟁’
두 회사의 배터리 전쟁은 벌써 1년6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전쟁은 LG화학이 지난해 4월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로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LG화학 일부 직원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핵심 영업비밀을 침해당했다는 게 LG화학의 주장이다. LG화학은 지난해 5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SK이노베이션과 인사담당 직원 등을 서울지방경찰청에 형사 고소했다.
SK이노베이션은 맞소송으로 응수했다. LG화학이 국내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한 지 한 달 만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LG화학을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및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해 9월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LG화학과 LG전자가 2차전지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는 소송도 제기했다. 이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LG화학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 취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강력 대응했다.
그러자 LG화학은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특허침해로 다시 제소한 데 이어 ITC에 조기패소 판결을 요청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배터리의 미래 가치 덕에 LG-SK ‘급성장’
두 회사가 5건이 넘는 소송을 주고받으며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는 배경에는 배터리 사업의 성장성이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시장도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전기차 누적 판매량은 717만대로 전년대비 40.3% 증가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시장 규모도 2016년 150억달러에서 지난해 388억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폭발적인 증가세에 힘입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7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은 10.5GWh로 전년 동월 대비 20.9% 증가했다. 특히 국내 배터리업체들의 성장세는 두드러진다. LG화학은 25.1% 점유율로 1위, 삼성SDI가 6.4%로 4위, SK이노베이션이 4.1%로 6위를 각각 차지했다. 3사의 합산 점유율은 35.6%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9%에서 2배 이상 올랐다.
미래 가치를 증명한 배터리 사업의 핵심 기술과 관련된 만큼, 두 회사는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두 회사는 기술 유출 정황이 담긴 ITC 예비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어떻게 사용해 배터리 소재와 부품, 셀, 모듈 등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ITC가 구체적 리스트를 갖고 있고 이를 인정했다는 주장이다. ITC 예비 판결문에 2018년 SK이노베이션 내부 이메일 중 LG화학 출신 직원이 ‘내가 유일하게 갖고 온 정리된 자료’라는 제목으로 57개의 배터리제조 핵심비결(레시피)이 담긴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는 설명이다. 또 SK가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정황도 ITC가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ITC가 예비판결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점을 들어 LG화학에 정면 반박하고 있다. ITC 예비판결은 특정 영업비밀 침해 내용을 인정한 게 아닌 증거인멸 행위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ITC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에 영업 기밀 침해와 관련 파괴된 증거 자료와 경제적 침해의 위협에 관련해 파기된 증거 자료가 무엇이고 타당한 연관성이 있는지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예비결정 당시 조사 범위에 포함됐던 침해된 영업 기밀 목록 등을 제출할 것도 명령했다.
합의 나섰지만 의견 차 ‘팽팽’
배터리 전쟁에서 SK이노베이션은 수세적 상황이다. LG화학은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을 이유로 ITC의 예비판결에서 조기패소 결정을 이끌어냈다. 부제소 합의를 깼다며 국내 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오는 10월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최종 판결은을 앞두고 ITC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지만, 이 마저 여의치는 않다. ITC가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예비판결을 뒤집은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판결이 내려지면 SK이노베이션은 막대한 손해가 예상된다. SK의 부품·소재 등에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미국 내 배터리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이미 총 25억 달러를 들여 미국 조지아주에 21.5GWh 규모 배터리 공장을 구축 중인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대규모의 투자 손실에다 폭스바겐과 포드 등 완성차 업체 납품 불발에 따른 피해 보상도 떠안아야 한다. 향후 배터리 사업에서의 동력을 잃는 것은 물론, SK라는 브랜드 이미지에도 상당한 타격이 우려된다.
LG화학도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장기간 법정 공방에 따른 피로감을 감내해야 한다. 더욱이 위원 5명이 만장일치로 재검토를 결정한데다 폭스바겐과 포드가 ‘전기차 생산 차질이 우려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며 SK이노베이션에 힘을 실어준 점도 부담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미국 경제가 침체된 가운데 SLK이노베이션을 제재하기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로 인해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합의금 협상에 나섰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인력 유출과 영업 기밀 유풀, 득허 침해, 증거 인멸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안이라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합의금의 ‘상식적인 수준’에 대해 엇갈렸다. LG화학은 자사의 인력과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SK이노베이션이 연구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인 반면 대규모 수주로 이득을 봤다고 주장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 출신을 특별히 채용한 게 아니며, 벤츠로부터 물량을 수주한 것만 봐도 자사의 기술력이 갖춰진 상태였다고 반박했다. 합의금을 어떻게 얼마나 산정할지에 대해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졌다.
다만 업계에서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결과가 두 회사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극적 합의의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팩트인뉴스 / 변윤재 기자 purple5765@facti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