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삼성일반노조와 해고된 한용기 씨가 삼성화재 본관 후문 앞에서 '삼성의 무노조경영'에 대한 규탄 집회를 열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라! 노동조합을 인정하라! 노동조합을 인정하라!”


8월9일 오전 12시경,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하나둘 회사 밖으로 나오고 있던 그 시간 서울시 중구 을지로1가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이같은 소리가 세 번 울렸다. 방금 들은 것이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이른바 노동 3권이 보장되는 노동자의 기본권리, 노동조합을 말하는 것일까. 지난 2011년 복수노동조합까지 설립할 수 있게 된 마당에 웬 때 아닌 노동조합을 인정하라?


이날 오전 11시 을지로1가에 위치한 삼성화재해상보험 본사 후문 앞에서는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에 대한 규탄과 무노조 경영의 희생양 한용기 씨를 복직하라는 주제로 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삼성화재에서 해직당한 한 씨와 삼성그룹의 법외노조인 ‘삼성일반노동조합’이 함께 자리했다.


이들은 을지로1가에 밀집한 회사 직원들이 밖으로 나오는 점심시간을 택해 남대문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하고 11시부터 삼성화재 본사 앞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집회 시작 전 그들은 미리 준비한 삼성 규탄 현수막과 자료들을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매달고 인도와 차도 사이에 세웠다.


이 과정에서 삼성화재 측 직원이 현수막을 걸고 있는 노조원에게 다가와 자리 배치에 제동을 걸었다. 둘 사이에 심상치 않은 대화가 오고 갔지만 삼성 측 직원이 한발 물러섰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그는 누군가에게 통화를 걸어 몇 명이 왔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짧게 보고했다.


집회는 쉽게 시작되지 못했다. 삼성화재 측 건너편에 걸어놓은 현수막을 놓고 타 기업의 관리자가 언성을 높이면서 집회 시작 직전 현수막은 결국 타 기업 관리자의 손에 떼어져 삼성화재 인도 내 가로수에 걸리게 됐다.


테이프로 대충 묶어둔 자료는 바람에 흩날리고 옮겨진 현수막은 잘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예정된 11시를 훌쩍 넘긴 11시48분에서야 집회가 시작됐다.


김성환 삼성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은 “삼성이 한 씨를 해고한 사건은 복수노조 시대에도 무노조경영 유지를 위해 미행・감시・사생활침해・인권유린 등 노동자탄압이 일상적으로 변함없이 자행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삼성화재에 근무했던 한 씨가 민주노조를 건설하려다가 해고됐다”고 지나가는 군중을 향해 호소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 이후 해직된 한 씨의 ‘폭로’가 이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미행과 감시, 납치 감금과 폭행자작극까지 긴 해고 과정을 설명하는 내내 힘이 들어갔다.


▲ 삼성화재에서 지난 7월 해고된 한용기 씨



해직된 한 씨와 삼성일반노조에 따르면 한 씨는 지난 2009년 삼성화재 직군통합 과정에서 일부 부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김 모 상무에게 직군통합의 문제점을 담은 서면을 제출하고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한 씨는 삼성의 일명 MJ사원(문제사원)으로 찍혀 관리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의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한 씨는 회사의 부당한 탄압에 방패막이가 돼 줄 노동조합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본부에 방문해 삼성화재의 노조설립을 문의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에서 돌아온 답변은 “삼성에는 이미 노조가 있다”는 것이었다. 2009년 당시 복수노조의 설립이 허용되지 않던 시기였기에 한 씨는 이 노조가 직원도 알지 못하는 일명 ‘유령노조’라고 말했다.


한 씨는 해고의 위협 속에서 2010년 2월 민주노총과 참여연대의 도움을 받아 삼성화재의 불법로비 의혹 등을 한 언론사에 제보했다.


한 씨는 제보 이후 삼성 측에서 보도의 확산을 막기 위해 2010년 3월11일부터 3주간 한 씨를 끌고 강화도・강원도・제주도 등지로 납치 및 감금했다고 폭로했다.


경찰에서 이번 방송 건이 문제가 돼 삼성화재 본사에 압수수색이 들어와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당분간 조용히 지내야 한다는 게 한 씨가 밝힌 감금 사유였고 본사 직원이 배치 돼 집을 감시하는 동안 회유와 무언의 협박 속에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감금 생활 동안 그는 김 상무로부터 “일본으로 가면 안되겠느냐”는 말을 들었고 3~4일에 한번 꼴로 자리를 이동했다고 밝혔다.


방송이 나가고 감금된 지 3주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곧이어 부산으로 발령이 났다.


한 씨는 부산의 전직원이 그의 감시자 및 보고자였으며 사소한 실수에도 온갖 폭언과 욕설이 쏟아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특히 지난 4월 김성환 일반노조 위원장과 최주성 전 삼성SDI 인사차장을 만나 노동자 관리와 탄압을 주도하는 삼성 구조본 인사팀 산하의 비밀조직인 지역대책위원회(이하 지대위)의 존재를 들은 후부터 삼성의 집중적인 미행과 감시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두달 후 한 씨는 회사 측의 의도에 말려 해고가 됐다고 밝혔다.


그의 실수를 노린 회사 측이 계속해서 술자리를 만들었고 지난 6월 회식자리에서 말다툼 끝에 한 씨가 회사 직원 두 사람과 다툼이 벌어진 것이 해고 사유였다며 ‘폭행자작극’과 다를 바가 없다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그는 감사팀의 조사 끝에 해고를 통보 받았다.


한 씨는 자신의 폭행은 잘못된 일이었지만 해고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해고가 형식적으로는 폭행이었지만 실제로는 노조 결성을 시도하려고 했던 죄를 물어 해고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씨에 이어서 삼성 기흥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황 모씨의 아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는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병을 얻고 숨져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힘들뿐더러 이를 사업주에게 요구하는 것이 개인의 입장에서 굉장히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녀는 피해자가족이 5년 넘게 싸워왔지만 삼성은 개인의 질병으로 치부할 뿐이라며 노조가 있었다면 우리 남편을 포함한 57명의 노동자들은 삼성에서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와 그녀의 사연 많은 이야기가 끝난 후 김 위원장은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된다’는 방침을 이어받은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이 무노조 방침이 경영에 도움이 된다며 무노조경영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는 이건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직원들은 따르라는 것 아니겠냐”며 “노동자들을 노예로 살라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초일류기업 삼성에서는 사내컴퓨터로 노조설립 혹은 백혈병 등 부정적인 글을 올리면 5분도 안돼 인사과에서 호출을 한다”며 “회사의 노무관리가 직원의 숨통을 끊고 사생활을 철저하게 짓밟는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이어 이번 집회 과정 중 삼성 측의 태도를 비난했다.


“후문 입구를 바리케이트 친 것에서 모자라 점심을 먹으려고 나오는 직원들을 정문으로 빼돌린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을지로1가 골목에 그들의 폭로성 발언이 스피커를 통해 아주 크게 전해지는 내내 직원들과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점심시간에 회사 밖으로 나온 직원들은 발언 하는 이들을 힐끔거리곤 바쁜 듯 자리를 피했다. 대부분의 시민은 무관심하게 지나쳤고 일부 시민은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집회가 진행되는 내내 건물관리자들은 현수막과 시위피켓을 두고 언성을 높였으며 결국 구석에 놓인 현수막 하나를 또 떼어내 집회 중간 흐름이 끊기기도 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직접 목격했다면 이러한 모습이었을까.


그들의 목소리는 컸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그곳에는 흐릿한 군중과 집회 내내 안절부절하며 그들을 지켜봤던 사측 그리고 집회의 ‘소란스러움’에 역정을 내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삼성을 향해 목이 터져라 ‘무노조경영 타파’를 외친 삼성의 해고자와 유가족 총 4명이 있었을 뿐이다.


삼성 “무노조경영 아닌 비노조경영”


삼성은 이번 한용기 씨와 삼성일반노동조합의 집회와 관련 “터무니없는 주장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집회 중간 기자에게 다가와 명함을 건네고 돌아갔던 삼성화재 측 홍보 관계자는 “한 씨의 해고 사유는 명백히 ‘주폭’으로 술을 마신 상태에서 동료를 폭행해 전치2주의 진단이 나오게 됐다”며 “만약 노조설립이 문제가 됐더라면 2009년 당시에 최 씨를 해고했지 왜 3년동안 잘 지내다가 지금에서야 해고를 했겠느냐”고 폭행자작극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미행과 감시 납치와 감금 등이 요즘 시대에 말이 되느냐”며 “한 씨가 언론사에 제보한 것이 문제가 돼 경찰한테 쫓기는 상황이었다. 한 씨도 경찰을 피해 다른 곳에 있기를 원했고 본사 사람과 함께 일이 조용해 질 때까지 잠시 떠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3주 동안 가족도 만나고 전화 통화도 다 했는데 그게 무슨 납치와 감금이냐”고 덧붙였다.


또 최 씨가 부산으로 발령이 난 것과 관련 “우리는 순환근무제로 모두가 자리 이동을 한다”며 “보복성 발령은 말도 안된다”고 설명했다.


“최 씨가 부산에서 보상업무를 맡았는데 법원에 나갈 일이 있어도 출두하지 않아 회사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최 씨가 전직 경찰출신이었는데 노조를 설립하려고 했던 것은 어불성설이 아니냐”며 “대부분의 경찰은 노조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그는 “이번 사안의 핵심은 최 씨가 동료를 폭행해 해고를 당하게 된 것”이라며 “정당한 사유로 해고가 됐는데 이번 사안과는 전혀 무관한 3년 전의 일을 끌어다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삼성이 노조를 설립하려고 했던 노동자를 감시하고 핍박한 사실이 없냐고 묻자 “다른 계열사는 (근무를 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삼성화재만큼은 그런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그러한 의혹들에 대해 반박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라면서 “삼성은 무노조경영이 아니라 비노조경영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삼성 계열사에 노조가 있는데 노조활동을 방해한 것이 말이 되느냐”며 “노조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직원이 많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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